시간이 흘러서 06년 여름 내가 일본 하카다항으로 떠나는 배에 오르기 까지, 그곳에서 많은 것을 겪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에 미치게 되면서 내게 여행은 구체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매우 선명한 행위가 되었다.
저자의 여행은 선명하다.
여행이 저자에게 주는 의미만큼 선명하다.
시간이 흘러서 06년 여름 내가 일본 하카다항으로 떠나는 배에 오르기 까지, 그곳에서 많은 것을 겪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에 미치게 되면서 내게 여행은 구체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매우 선명한 행위가 되었다.
저자의 여행은 선명하다.
여행이 저자에게 주는 의미만큼 선명하다.
흔히 DR에 대해서 말할 때 마지막 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재미있으나 마지막 권은 작가의 사상을 두서없이 늘어놓아 공감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는 이야기의 나열이라고 한다. 나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번 완독을 끝내기 전 까지는 말이다.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교류와 변화, 풀어서 말하자면 상호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가치와 태도, 행동의 조율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는 적당한 관념을 갖고 있지 못했다. 비유컨대 천재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미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상의 기술적 사상, 혹은 철학적 사상에 대해서 창작의 주체와 비평의 주체는 공유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록 작가에게 팬으로서 어필한 적은 없으나 나름대로 소설가 이영도의 팬을 자처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접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이 때에서야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부끄럽다. 그가 은밀하게 숨겨 놓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소설에서 그토록 열심히 열거했던 것이니 말이다. 이전에도 활자야 눈에 들어왔겠지만 그 의미에 공감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이래 놓고서 ‘라자와 퓨처워커에서는 톨킨 및 여타 세계관을 큰 수정 없이 차용하던 그가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고 눈물을 마시는 새에 이르러서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한다.’ 느니 하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나는 이영도가 비폭력주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지, 혹은 그가 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번 완독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감정을 갖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작년 말부터 올해 봄까지 비폭력주의에 관한 지식을 접하면서 그와(비록 그 출발점이 다를지라도) 공감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는 비폭력주의, 혹은 비폭력대화라고 불리는 그 방식을 작가는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본 것 같다. 혹은 우리가 비폭력주의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기교만을 배울 때 나오는 문제점에 대해서 이미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풀어서 말하자면 교류와 공감은 막강한 물리적 폭력이 닿지 못하는 영역(심지어 정신적 폭력도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변화 시킨다. 이는 자율에 의한 변화다. 여기서 나는 인간이 폭력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는 대신 교류와 공감을 통해서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였고, 저자의 핸드레이크 역시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저자의 후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권 이전까지 후치를 내세웠을 뿐 후치를 통해서 들어나는 것은 꺼리던 저자가 마지막 권에서는 우리에게 흡사 전지적 작가 시점을 읽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자신을 들어낸다. 인간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 상대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공감하기 쉽게 만드는 쪽을 택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을 대충 읽어봤을 때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확실히 알겠다. "기교가 아닌 감성으로." (반면에 책의 부제는 마치 사진의 근원이 빛에 있다는, 사진 원리의 가장 근원에 다가서는 듯 하다.)
감성 없는 기교로 다가 설 때 사진은 얼마나 가치 없어 지는가? 어찌보면 아마추어에 입문한 이상은 누구나 한번 쯤은 거쳐가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고민이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고민의 평균값과 그에 대한 해를 제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뭐랄까.. 농담을 좀 섞어서 '과격한 감성사진주의자' 같은 인상마저 남긴다.
기교로 시작한 사진이 벽에 부딫혔을 때 감성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반적인 아마추어들과는 달리, 저자 레아는 시작부터 감성, 과정에서도 감성, 그리고 감성이 담긴 결과물을 추구한다. (물론 그도 사진가인 이상 자신의 카메라를 조작하는 최소한의 기교는 사용한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저자에 대한 이런 나의 평가가 바뀔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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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을 마친 시점에서 드는 몇 가지 생각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사진 입문자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저자의 성향이 너무 뚜렷하달까?
조금 안 좋게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아집이라고 할 만큼 '감성'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느낌이다. 아니, 감성에 집착하면서 그 이외의 것들을 배척하는 것이 문제다.
취미 사진가든 아마추어든 반드시 프로가 아니더라도 사진에는 엄연히 이론이 있고 기술이 있다. 또한 장비에 대한 지식이나 노하우 역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교나 장비에 침몰하듯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이러한 감성 외적인 요소들을 추구하는 것을 백안시하는 것 역시 초심자에게는 겉멋에 가깝다. 그것도 균형감각을 잃게 만드는 종류의 것으로.
반면, 입문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기교나 장비에 집착해서 초심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래글을 보면 알겠지만 여행기는 정말 빨리 읽힌다. 우선 사진이 많은 만큼 텍스트는 줄어들지 않는가?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같은 아마추어 사진가인 배두나를 평가하자면.. 테크니컬한 부분은 평가하기 힘드나 솔직한 사진이 마음에 든다. 여기서 솔직하다 함은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찍고 싶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해서 평가..는 아니고 감상을 말해보자면 좋은 정보가 많아서 좋았다. 나는 주로 디지털 사진을 찍는데 저자는 필름 사진을 꽤 즐기는 모양이었다. 나도 필름 사진을 찍기는 하지만 아직 입문 수준이고 50mm 단렌즈 하나에 35mm 필름만 줄창 찍을 뿐이다. 필름도 두 종류 밖에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contax g6와 Nikon F3, Leica M3 등의 사진기와 여러 필름의 색감들은 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내가 위에 저런 글을 잔뜩 써 놓은 것은 고백하자면 글이 너무 짧아지는 것이 책에게 미안해서이다. 책의 내용 내내 나를 진정 감동시킨 것은 몇줄 안되는 이 글귀이다.
그리고 찍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꼭 찍고야 마는 지독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도, 사진도 결국은 나 자신과의 승부 같은 것이다.
이 책을 살 당시 나는 경제적인 형편이 그다지 좋은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업무상 필요한 책과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 -최소한 5번은 읽고 싶고, 5년 후 10년 후에도 읽을 책, 인생을 바꾸는 책- 이외에는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이 책장은 비어서 좋고 지갑은 가득차서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충동구매한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구매할 당시의 내 자신이 이해가 가든 말든 이 책은 스스로의 가치를 내게 보여주었다. 사진과 여행의 즐거움을 내게 되새기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여행을 간직하는 감수성이 나의 그것과 닮은 점이 있어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기도 했다. 저자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의 여행은 낯선 곳에서의 자신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떠난다. 여행의 하루는 일상의 한달과도 같다.
여행에서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만들어 놓았거나 유지해야 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없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에서 우러 나오는 내 자신이 되기가 용이하다. 이 과정에서 베인 습관이라는 것이 방해 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게 내가 가장 고마워 하는 부분은 전작인 런던놀이를 알게 해줬다는 점이다.
저자인 웬디 베케트의 관점과 해설은 사실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다. 조금 평온한 가운데 자긍심과 겸손함을 번갈아가며 비치는 듯한 생각이 드는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다른 비평서를 읽으면 웬디수녀의 관점이 갖는 깊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본문에서 밝혔듯이 '유명하지 않은 거장들의 그림'을 소개하는데 주력한다. (여기서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고흐나 모네의 대표작들과 같은 그림에 비해서 유명하지 않다는 의미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구에르치노의 <감옥에 갇힌 성 요한을 방문한 살로메>와 같은 그림은 몰랐다.
그동안 내가 사진을 꾸준히 찍으며 구도와 인상에 대해서 이전에 비해 생각을 해온 덕분인지 그림을 보면서도 예전보다는 주관이 생겼다. 바꿔 말하자면 내가 사진에 있어서 선호하는 스타일이 그림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감옥에 갇힌 성 요한을 방문한 살로메>와 같은 그림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준다. 또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의 <골로빈 백작부인> 같은 경우에도 보고 있으면 화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모습이 특별한 사전지식 없이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다. 웬디수녀의 설명이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강렬함을 과장 없이 설명한다는 것이다. (여타 책의 저자들은 자신의 지적수준이나 강한 주관을 피력하고 싶은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곤 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앨런 램시의 <화가의 아내>, <앤 베인, 앨런 램시 부인>인데 둘다(특히 전자는) 화가의 심리가 그림에 깊이 투영된 그림들이다. 큰 특징은 이 두 작품을 비교해 볼 때 화가가 가족들과의 사별을 통해 어떤 두려움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첨부파일을 통해 하도록 하고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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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판타지에는 손이 안 가게 되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잠시 들었다가도 시간낭비한다는 기분만 들고는 덮어버린다. 하지만 역시 이영도씨 소설은 예외다. 손이 안 가기는 커녕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어서, 주위에 급히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 특히 [피를 마시는 새]는 양장본으로 8권 짜리인지라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독후감 추후 첨부 |
마틴루터킹에 비해서도 간디는 파격적이었다.
물론 그의 자서전이나 평전 등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인생이 어릴적 위인전에서 읽은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은 알 것이다.
내가 말하는 파격성은 위인으로서가 아닌, 비폭력주의(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또한 복잡하지만)의 선구자로서의 간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비폭력주의자들이 보기에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불교도는 석가모니를 지향한다.
그리고 또 그것이 합당하다고 여긴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리고 오로지 그것이 합당하다고 믿는다.
물론 간디가 신적 존재는 아니지만..
비폭력주의자들에게 간디는 그런 존재일 수 있을까?
그 위대함의 경중을 떠나서-
간디는 아마도 비폭력주의자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모습일 것이다.
간디가 젊은 시절에 보인 극우성향.
권위와 영국을 찬양하고 전쟁에 까지 뛰어들었던 모습.
극도로 가부장적인 가치관, 행동.
그러면서도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모습.
그에게 다가오는 사건과, 그가 행한 일들 속에서
폭력을 혐오하는 간디, 자신의 이상을 믿던 간디.
한 걸음 씩 우리가 존경하는 간디의 모습이 나온다.
또 그런 그를 읽으며 이해하고 공감하는 내 자신이 있다.
나 또한 저렇지 않았던가?
비폭력을 접하기 전까지 나도 헤메고 날뛰며 저렇지 않았던가.
그리고 간디가 60에 이르러서야 깨달음과 행동을 하나로 엮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갈 길은 얼마나 더 먼가?
손 안에 물을 담고 그 안에 햇빛을 담아 소금을 만들어 총부리를 거두게 하였던 위대한 선각자이자 정치가 간디는 하루 아침에 있지 않았다.
간디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그가 '20세기에서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 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우리가 원하는 인간의 모습에 가장 가까이 갔다는 말 처럼 들린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 하여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이다.